일상/끄적이는 낙서

가을날의 작은 행복

파도의 뜨락 2005. 9. 22. 21:00

가을날의 작은 행복

 

 

 

올 여름부터
저와 제 친구 세명이 우연찮게
6평이 되는 자그마한 주말농장을 빌려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처음 땅을 빌렸을 때는 단순히 생각했습니다..
상추라도 심어보자고..
그러나..
사실 우리 네명은 농사를 전혀 지어보지 못한 농사의 초짜입니다..
그래서
처음 상추씨를 뿌리던날,..
땅을 파고 고르고는 어떻게 하였으나
씨를 어떻게 어디에 뿌려야 하는 줄을 몰라서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고 하여 씨를 뿌리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우습게 심었던 상추와 쑥갓을
쑥갓은 벌레에 헌납하고
그래도 상추는 솔솔히
여름에 수확을 하여 먹었습니다...

8월 중순경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막바지 여름에..
우리는 다시 씨앗 가계에 가서 상추씨와 배추씨를 사왔습니다..
종묘상 주인의 말씀에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상추는 9월 초에 심고 배추는 뿌려도 된다고 하기에
우리는 상추를 포기하고
배추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벌레가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을 우리는 미쳐 몰랐습니다...
배추 씨앗을 뿌리고나서
첫주에는 떡잎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 에 방문을 해보니
배추떡잎과 한잎 두잎 솟아난 속잎들이 벌레들에 시달려
한잎도 빼지 않고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습니다..
어찌 할 줄을 모르고 속만 상하고 돌아왔다가
그 다음주에 방문을 해보니..--;;
몽땅 벌레에 희생양이 되었는지
그 많은 배추들이 흔적이 없이 말라져 죽어 버렸습니다.. 
8월 그 뜨거운 여름에 뿌려두었던 배추는
이렇게 아무런 수확도 없이 땅만 황폐화 되어 버렸습니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씁쓸한 마음에 속만 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벌레가 안 먹는 상추나 심는 것이
맞는 농사법이라고 터득을 했씁니다..


바쁘게 두어 주 가 그냥 흘렀습니다..
땅에 무엇인가는 다시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어제 다시 밭으로 출동했습니다.
터득한 데로
이번에는 상추만 심어야 하는데도
막상 종묘상에 간 친구가 씨앗을 골고루 사왔습니다..
가을이라 벌레가 많이 없다는 종묘상의 말을 들은 모양입니다..
퇴비사고,상추씨사고,배추씨사고,시금치 씨도 사고 했습니다..
비록 자그마한 땅이지만
골구루 심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것입니다..
친구마음이 내마음이요 또 다른 친구 마음이기에
우리는 그 벌레의 악몽을 몽땅 잊고서
골구루 심어본다는 사실이 더욱 신났습니다..
벌써 마음속에는
시금치무침과 배추쌈과 상추쌈이 식탁에 오르 내리고 있었습니다..
히~!


아침부터 하늘에서 비님이 한 두 방울 내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먹은 김에 끝내야 한다고
비 맞을 각오도 하면서 오후에 밭으로 출동하였습니다...
생전 농사도 지어 본 적이 없는지라
농기구라고는 호미하나 있을 턱이 없습니다..
생각 끝에 긴급 조달 된 농기구가
작년에 우리가 바다에 조개케러 가다 샀던
조개캐는 갈쿠리였습니다...
밭에서는
그 갈쿠리가 그렇게 훌륭한 농기구가 될 줄 몰랐습니다..
호미도 되고 삽도 되고 쇠스랑역할을 해 가며
여섯평의 자그마한 공간을 쇠갈쿠리로 헤집고 헤집었습니다..
다행히 하늘도 협조를 해 주었는지
잠시 비님도 내리지 않아서
부지런히 하늘을 처다보아가며
열심히 파고 고르고 하였습니다..
여전히 상추씨앗을 뿌리는 것과
배추씨앗 뿌리는 것과
시금치 씨앗 뿌리는 것이 틀리겠지만
서툴고 아무것도 모르틑 초보 농사꾼들은
그냥 똑 같이 뿌렸습니다..
그리고 종묘상 주인의 말대로 퇴비를 맨 위에 뿌려주고..
흙으로 살살 흙을 긁어 덮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드디어 작은 밭을 일구었습니다...

아 .. 이 뿌뜻하고 대견함이란...
입가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며
비님을 잠시 멈추게한 하늘께 감사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감사하네 감사하네을 연발하며 차에 오르는 순간..
갑자기
비님이 마구 쏟아집니다...
'어머~! 아이고 감사해라~!1 아휴 좋아라..'
'그래 비가 왕창 쏟아져도 이젠 겁안난다..'
'호호호.. 우리가 일을 마친줄 하늘도 아시네??'
'비야..쏟아져가.. 쏟아져라... 우리 씨앗들이 쑥쑥 자라게..'

이렇게 우리는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대견스레 우리가 일군 밭을 처다보았습니다...
앞으로 한달이 채 못 되어 우리의 수확을 거둘날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자그마한 우리의 놀이터에서 벗어났습니다...


-  한달 후 어느날  반찬거리가 해결될 것이 기쁜 파도 -

200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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