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내 기억속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들에 관한..

파도의 뜨락 2010. 10. 20. 08:31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그렇듯..

시간이라는 친구를 동반하고 살고 있다.

나에게도 찾아든 시간이라는 친구에게

어김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정복을 당하고 살았다.

세월과 함께 점점 세력을 키워가더니 

몸이나 마음은 물론이요 어느새 나의 뇌세포까지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고 내게 저장 되어 있던 수많은 데이터들이 하나 둘 내 기억 속에서 지워져간다.

어느날 부터 물건을 코앞에 두고 찾아 헤매는 것은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너무 급하고 빠르게 내 신경을 거스르며 뇌의 흐름도 좁아지더니

뻔히 보이는 것 마저도 찾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단어의 끊김이라든지

기억의 단절이라든지

생각의 멈춤이라든지 그 무엇이든 다 답답하다...

그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순 없다지만

좀 더디게 행동하면 누가 뭐라나.. 천지가 개벽할 것도 아닐진대

왜 그렇게 빨리 행동을 개시하고 있는지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덩어리로 쏟아낸다..

 

어제 나보다 이년이나 더 늦게 태어난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가 약국에서 치매 약을 진단 받아왔다고 신세타령이다.

냉장고에 가서 요릿감을 꺼내려고 하였는데

금세 깜박 잊고서

안방인 줄 알고 냉장고 문에 노크를 했다는 일화로 웃음을 제공했던 친구다.

평소 건망증이 나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심했던 친구인데.

그 친구가 엊그제 심한 충격을 겪었단다.

동네 마트에 가서 커터기를 꺼내면서 

동전을 넣어 커터기를 꺼내야 하는데 동전을 어디에 넣는가를 잃어버리고

이곳저곳 아무 곳이나 쑤셔 넣다가

커터기 두 개가 한꺼번에 뽑아져 나온 것을 보고

뒷사람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자신의 한심함에 가슴을 덜컥 쓸어내렸단다.

하루 전에는 늘 쓰던 조금 복잡한 이온수 정수기를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레벨을 돌려야 하는지 사용법을 순간 까맣게 잊고서는

아무리 기억을 해내려고 해도 생각이 나질 않아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당황을 해 버리고서는

그대로 황급히 약국으로 달려갔단다.

그리고 치매 약을 사와서 먹는다고 한숨을 쉬어댄다.

그 친구가 겪는 아픔이

쉬 내게도 닥칠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어제 아침에 출근하면서

카드와 운전면허증이 든 지갑이 보이질 않아서 찾느라고 아침 내내 쩔쩔매었다.

그제 오후에 주유하면서 결제를 하였던 기억이 나서

핸드백을 뒤집어보고, 차로 달려 나갔다오고

남편에게도, 주유소에도 전화를 해보다가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간신히 그날 입었던 점퍼에서 찾아내었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애타했으면서도

그리고 금방 잊어버리고 어제 하루 종일 헤헤거리는

그런  어린이 같은 나의 뇌 흐름의 비애를 어찌 극복해야하나...

 

크리싱폼으로 얼굴을 세수를 하고나서 머리를 감았다

샴푸를 분명 펌프해서 머리에 거품을 내는데 향이 틀리다.

샴푸 옆에 있던 바디클렌저를 펌프한 모양이다.

대강 감고서 트리트먼트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

다시 샴푸를 펌프하고 말았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까워서 다시 샴푸를 하고 만다.

샴푸처치를 끝내고

그리고 부담 없이 다시 세수를 하려다 폼크렌저를 짜면서 생각하니

그때서야

아까 참에 세수를 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자주 변하여진다.

쉴 시간 없이 재잘거릴 때도 있고

또 어떤 땐 한 마디도 하기 싫을 때도 있다.

열정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나의 뇌도 감정처럼 잠시 생각을 쉬는 것 아닐까??

어제의 지갑 사건도

오늘아침 욕실에서 벌인 나의 전쟁도

잠시 쉬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아래사진은 어제 아침

울집 베란다에서 바라다 본 내 머릿속 만큼이나 뿌연 회색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