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열무김치 이야기

파도의 뜨락 2010. 7. 13. 05:51

 

 

 

한 달 전 주말농장에서

동서와 제가 심은 열무를 수확해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비벼먹거나 쌈으로 하기에는 조금 많은 양이었고

다른 사람을 주기에는 굵기가 가늘고 양도 어중간하였습니다.

겉절이를 할까 생각하다기

퍼뜩 멋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적에 외할머니 댁에 가면

우리 외할머니가 열무에 찹쌀 죽을 걸쭉하게 끓여서

고춧가루 섞어 만들어 주셨던 김치는

물김치는 분명 아니었고 그렇다고 김치도 아니었던

정말 물을 자박하게 담가 논 반 물김치였었습니다.

그 때 그 반 물김치가 그렇게 맛이 있었습니다.

수확해 온 열무로 외할머니처럼 그 반 물김치를 담그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생뚱맞게 어렸을 적 외할머니 김치가 생각난 것입니다.

 

열심히 담았습니다.

모양과 색깔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맛도 한밤 자고 일어낫더니 새콤하게 익어있었습니다.

그 김치를  밥상에 올려놓고서는 괜스레 뿌듯하여지며

나도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담는 가에 관하여 상당히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시큼한 맛과 열무의 향이 어우러진 맛이 이상하였던지.

한 번씩 먹어 본 아이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맛이 이러냐고 

그 이후 손도 대지 않았지만

남편이 이거 수저를 대야 하는지 젓가락으로 먹어야 하는 지 묻더니

말없이 가끔  젓가락으로 한 두먼 먹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말아먹기도 하고, 국수에 비벼먹기도 하며

그렇게 일주일동안을 신나게 저만 먹었습니다.

 

저번 주 일요일 오후

주말 농장에서 채취한 열무를 시어머님께 가지고 갔습니다.

사실 시래기를 하시던가.

삶아서 무쳐 드시라고 가지고 갔는데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침 이 열무로 김치를 담그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입이 아프시다 며 열무로  물김치를 담그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잠시 생각 하다가 결정을 지었습니다.

어머니 이도 아프시니까

우리 집에서처럼 열무 물김치를 담그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아니 먹었어도

어머님 입이 아프시기도 하고

옛날 분이니까 그 맛을 아실 터~!

이 상황에 딱 알맞은 김치 같았습니다.

제가 담가 드리고 가겠다고 하니까

다른 때는 본인이 담그신다고 놓고 가라하시는데

몸이 아프셨는지 귀찮으셨는지

알아서 하라며 제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씻어서 간을 절이고

냉동실에서 찹쌀가루를 꺼내서 걸쭉하게 죽을 쑤었습니다.

한 시간이 흐른 후

간이 절여진 열무를 씻어서

김치 통에 넣고

약간 따스한 기가 남아있는 죽을 부어서

파, 양파, 생강, 마늘만 넣고

입이 아프다고 하시기에 고춧가루는 넣지 않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정말 자박하게 담가

앞 베란다에 익으라고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 김치 통을 보고 뿌듯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동서는 그렇게 빨리 담는 것을 신기해하였고

어머니도 제가 김치를 담그는 것이 신기하신지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토요일 날이 제 친정아버님 기일이었습니다.

친정식구들과 모여앉아서  추도 예배를 마친 후

담소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슨 말 끝에 친정모친이 제 시어머님 애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사실 제 친정과 시부모님 댁은  담하나 건너면 되는

가까운 아파트에 사십니다.

두 분이 젊었을 때부터 안면이 있으셨고

우리 부부가 결혼 한 후에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시다가

지금은 친구처럼 드나들고 계시는 관계이십니다.

종종 나이가 더 젊은 모친이 물김치나 밑반찬이나 김치종류를 담가

시어머님께 가져다 드리는데

저보다도 두 분의 왕래가 잦은 편이라 저 모르는 이야기를

두 분은 많이 공유하시는 관계이십니다.

그래서 모친이 시어머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네가 이번에 시어미님 김치를 담가 드리고 갔다면서?? 

그 김치 어떻게 담갔는데 네 시어머니가 드실 수 없다고 하시냐?!""

"왜?????  못 드셨데요?? 나에겐 아무 말씀 안하시던데??

열무로 그 외할머니 김치 만들어 드렸는데??

만들기 쉽던데요?? 젓갈도 안 들어가고~!!"

"외할머니 김치??"

" 예~! 그거 있잖아요. 물 많은 열무김치요..찹쌀 죽 걸쭉하게 쑤어서  담근 거~!"

" 그 김치를 어떻게 담았는데?"

" 찹쌀 풀 쑤어서 소금이랑 양념이랑 넣고 담가 드렸지요

 고춧가루 넣지 말래서 안 넣었고~! 난 장하고만,,왜? 안 드셨지?"

" 아이고~! 하하하.. 네가 그렇지...!

그 김치는 고추를 갈아서 찹쌀 풀을 조금 넣고 매콤하니 담아야 맛이 나는 것인데

달랑 찹쌀 풀에다만 담가 드렸다고?? 그것도 걸쭉하게??

에구머니! 그래서 그 양반이 맛이 머 그런 맛이 있냐고 하셨구먼!!“

“엥?????”

“풋~! 오죽했으면 사돈인 나에게 네 흉을 보았겠냐!!

네가 담근 그것이 물김치도 아니고 김치도 아니었고

희멀겋고, 시금털털하고, 걸쭉하고. 당신 생전에 그런 맛 처음 본다고~!!!"

"정말요??? 으아~~~!!"

어째 고맙다는 전화가 한 번도 안 오시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래는 반 열무김치입니다

지난 주에 또 담아보았습니다,,

맛있게 생기기 않았나요??  

저는 맛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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