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빛을 따라서 오랜시간 거슬러..

파도의 뜨락 2010. 2. 26. 07:42

 

빛을 쫓다가 오랜 시간 거슬러.

 

여명의 시간이다.

아침이 깨어났음에도 흐린 날씨 탓인지 빛이 흐릿하다

그 아침을 맞으려 앞 베란다에 나가 보았다,

아직 새벽일까? 채 어둠이 걷히지 않았음인지

아파트 압동 어느 방에서  한줄기 불빛이 새어 나온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그 빛을 쳐다보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내겐 이상하게 생각될 만큼

별처럼 자그맣게 비추이는 빛만 보면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어둑한 곳에서  멀리보이는 아련한 빛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설렌다. 

 

시골 벽촌 사셨던 나의 할아버지동네

여덟 살이 되어 부보님 집으로 옮기기 전까지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고

학교 다니면서도  방학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 집에 가곤하였기에

추억이 많이 서린 이 할아버지 집을 난 늘 그리워한다.

세월이 흘러 무심히 세상을 살다가도 

유난히  별빛처럼 자그맣고 아늑한 빛을 보면

나의 어린시절에 살았던 그 곳

그 마을과 나의 할아버지가 자꾸만 오버랩 되어 생각이 난다.

 

삼십 여 가구가  살고 있는 할아버지동네는 

반은 우리 씨족이었고 반은 다른 성씨가 섞여 사는 마을이었다.

그 자그마한 이 산골 마을에는 그 시절 전기가 없었다.

호롱불과 양초로 저녁의 빛을 비추었으며

그 마저도 일찍 빛이 꺼지기에

빛이 없는 밤에  돌아다니다 보면 참 무서웠던 동네였다.

사방이 친척이었기에 스스럼없이 동네 이집 저집을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꿰고 다닐 수 있었어도

동네 앞뒤에 커다란 산이 있어 밤이면 더욱 캄캄하였는지

늘 밤만 되면 으스스 무서웠다.

밖에 잘 다니지 않았음에도

할머니 심부름을 다닐 때나. 친구들과 만날 일이 있거나

때론 늦은 밤에 할아버지 집에 들어 갈 때에는

캄캄한 길이 무서워서 조심스러이 살피며 걸었었고

금방 아리도 귀신이 나올 듯 한 공포가 섞여서 다녔었다.

그 밤길을 다니다가

할아버지집 싸리문에 들어서면 방문에서 따스한 호롱불의 빛을 보였었다.

그러면 그 무섭던 공포가 사라지고

너무나 반갑고 좋아서 막 뛰어 들어갔었다.

 

할아버지 동네는 버스가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면 소재지에서도 오리쯤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산골 벽촌이었다.

동네 분들은  군청에 가거나, 장을 보거나, 기차를 타거나 하려면

몇 대 다니지 않은 이 버스를 이용하여야 하였다.

그렇게 버스는 할아버지 동네에서는 참 중요 하였는데

종종 시간을 맞추지 못하여 귀가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밤늦게까지 걸어서 집에 와야 했었다.

난 할아버지와 밤길의 추억이 많이 있다.

할아버지는  20리길 교회를 다닐 때도 있었고

읍으로 5일장을 보러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가실 때도 있었고

매년  방학 때마다  나를 데리러 오시기도 하였었다.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교회에서 볼일을 보다가 늦거나

장에 다녀오다가 버스를 놓치거나

기차가 연착되어 역시 귀가버스를 놓칠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할아버지와 난 큰 신작로 길을 따라 걸어서 집으로 가야하였고,

때론 지름길로 빠르게 재를 넘어 할아버지 마을까지 걸어가야 하였다,  

밤길에 할아버지와 산골의 그 조그마한 신작로 길을 걸으며

멀고먼 할아버지 집까지 걸어서 귀가를 하면

캄캄한 길이 참 무섭고 지루하였었다.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걸으시기도 하고 

때론 업으시기도 하셨겠지만

난 어린 걸음에 얼마나 먼 길이었는지 모른다.

하늘의 달이나 별도 있었을 터인데 칠흑같이 어두운 길만이 떠오른다.

힘들게 아주 오래 걸어다가보면

어득히 저 멀리 산중턱에서 불빛이 보였고

또는 강 건너에서 별처럼 비추이는 빛이 있었다.

많이 보이지도 않고 겨우 한두 개의 불빛인데도

그 빛만 보면 사람의 흔적을 표시한 것처럼 보여서

다소 무섭던 마음이 진정이 되면서 무척 반가움이 밀려왔었다.

할아버지도 나처럼 반가운지

'조그만 걸으면 집이 보일거다' 하면서 힘을 실어주셨다.

그러면 나는 힘을 내어서 

그 불빛이 할아버지 동네이기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도 걸었었다.

 

아파트 압동에서 흘러 비추이는 빛을 보면서

그 아련한 추억의 불빛이 반가운 마음과 어우러져 생각이 났다.

분명 불빛은 그 시절 보다 강렬하고,  빛의 색도 다르지만

내 가슴속에 들어앉았던 아련한  한 조각의 추억까지 꺼내어져서

무척이나 그립던 그 시절이 불러와져 버렸다…….

한참을 그 집을 바라만 보았는데

어느새 그 집 불빛은 사라지고 환하게 태양 빛에

날이 깨어났다.

몇 분 사이의 빛의 추억은  밝아오는 빛으로 변하여지고

난 이렇게 아침을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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