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된장죽에 현혹?되다.

파도의 뜨락 2010. 2. 17. 20:13

 

 

 

나의 냉장고에는

친정 모친이 만들어 주는 반찬의 가짓수가 참 많다.

김치는 백퍼센트 모친 것이고

고추장 된장을 비롯하여

각종 밑반찬이나 장아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물류까지도 모친이 만들어 주신 것들이 많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지금까지 친정모친의 손을 거쳐 반찬을 가져다 먹는가 하고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없지만

나름대로 모친에게 그만 하시라고 말리기도 하였고

주지 마시라고 투정도 부려 보았으나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역정을 내시기에 

모친이 주시는 데로 가져와서 지금껏 잘 먹으며 살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우리 집 반찬은 

50퍼센트 이상이 친정모친의 맛이 지배를 하였고

나의 손맛은 정체성을 잃고서 지금껏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모친에게 가져온 반찬거리 중에

된장양념을 버무린 시래기 봉지가 있다.

친정모친은 바쁜 나를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된장국을 끓이기 싫어하는 줄을 아시기에 그러는지

항상 시래기를 주실 때에는 그냥 주시는 법이 없고

된장에 양념까지 버무려서 물만 부으면

된장국이 완성 되게 만들어 주시곤 하신다.

나는 된장국을 싫어한다.

우리 집 식구들도 된장국을 즐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끓이기 쉽게 만들어 주시는 시래기일 지라도 

대부분 거절을 하면서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주실 때가 있다. 

하 거절하다 모친 고집을 꺾지 못하고 지치면 그냥 가져오는데

그렇게 가져온 시래기뭉치들이

우리 집 냉장고나 냉동실에는 상비처럼 하나 둘은 어디쯤 저장이 되어있다.

 

며칠 전  친정모친이 또 시래기를 주셨다.

이번에는 그 시래기 한 봉지를 냉동실에 넣지 않고 장하게 끓여보기로 했다.

아침에 끓이기는 하였지만

나는 국을 먹지 않는 사람이고

아들과 딸아이는 입맛이 없었는지 쳐다보지도 않았고

오직 남편만이 그 국을 먹었다.

맘먹고 끓인 시래기 국이 양은 많고 먹을 사람 부족하였다,

끓일 때 맛있었던 된장시래기 국이 냄비에 남아서 삼일이 흘렀다.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데워만 놓았더니

어제 아침에는 소태가 될 정도로 짜져 있었다.

어제도 남편만 먹고 아무도 먹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어떻게 처리할까’ 한 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국이었기에

하루만 더 식구들에게 억지로라도 먹여보려고 물을 더 붓고서는 데웠다.

결국은 내 건망증이 심한 것을 티내느라고

정신을 딴 데 팔다가 된장국을 태울 뻔했다.

냄비를 들여다보니 국물이 다 닳아서 시래기 건더기만 보였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물을 붓고 또 끓여 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또 잃어버리고 아주 푹 고아버렸다.

또 태우기 직전까지 간 된장국에 물을 다시 부으면서

국을 보니 완전히 된장 죽??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남편에게 주었다가는 분명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기발한 기지를 발휘(?)하여서

냉동실에 있는 곰국을 급히 데워서 내 놓았다.

남편이 출근 후

밥 먹으려 식탁에 앉은 딸내미에게 

아까운 미련이 남아서 된장 죽을 조금 떠 주어 보았다.

딸애는 한 수저 떠먹더니

"이 국  며칠 되었어?? 모양과 맛이 왜이래??"  한다.

양심이란 단어가 슬며시 떠오르기에 한마디 거들었다.

“왜?? 좀 싱겁지?"

딸내미는 “많이” 하더니 이내 “안 먹을래……!.” 하고는 국그릇을 밀어 버린다. 

염치없던 난  슬며시 싱크대로 가서

냄비에 남아 있던 그 많은 ‘된장 죽’을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