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내게 묻는다..

파도의 뜨락 2008. 1. 15. 09:20

 

지난 가을 어느 날

남편도 출장이고 아들도 학교 기숙사로 가버리고

집에는 딸애와 나뿐이었다.

둘 뿐이기에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인스탄트로 대충 해결을 해 버리고.

딸아이는 컴퓨터에 앉았고

나는 책 한권을 들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침대에 누워서 내 양쪽 옆에 조그만 벼개를 가져다 놓고

오른쪽으로 누워서 한족 팔로 팔벼개 하듯이 책을 놓고 손가락으로 책을 잡았다,

책의 내용이 10cm가까이에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내 나의 행복한 글 읽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책을 읽으려고 책상에 앉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목이 좋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면 목도 아프고

눈도 좋지 못해서 글씨가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누워서 책을 읽다가

나에게 딱 맞는 나만의 책 읽는 방법을 터득을 하게 되었다.

양쪽에 베개만 있으면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안경도 필요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날 후 부터

책을 읽을 때면 대부분 편히 누워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조금의 불편함이라면

벼개가 세개나 있어야 하는 것과

혼자만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문제가 되다는 것만 빼면

완벽한 나만의 책읽기 방법이었다.

늦은 밤에는 남편 때문에 안방에서 글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이날은 남편 출장이니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이

안방 침대에서 읽을 수 있는 기쁨에 잠시 흥분까지 되었다.

 

400여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한참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키스탄과 네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 였는데

몇 장을 읽어내려 갔는데

내용이 좀 지루하고 무거웠다.

재미가 없던 터라 몇 장 읽다가

혼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잊은 채

깜박깜박 졸음을 섞여가며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행복을 놓치면 안되기에

눈에 쌍씸지를 켜고

잠을 쫒아내 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깜박 잠이 들었었나보다,,,

비몽 사몽 잠결에 딸애가 안방 불을 끄는 소리가 들려서

난 재빨리 눈을 뜨고 불을 끄지 말라 하였다.

딸애가 전기 스위치를 다시켜고서는

내 침대 옆으로 오더니

'잠든것 아니었어?' 하고 물어온다

'아니~ 책 읽어!'

라고 대답을 하고선 고개를 저어 가며

잠결인 정신을 추스리고

다시 읽고 있던 책에 눈길을 주었다.

딸아이는 나가지 않고 한참을 나를 바라보더니

" 에게~! 엄마는... 못 봐주겠네." 한다.

내가 눈을 부스스 뜨고 바라보자

"어떻게 뒤에서 앞으로 책을 읽나?

책을 거꾸로 읽는 재주까지 생겼어?? " 한다.

무슨 소린가 싶어서 멀뚱이다가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은 난 사태 파악에 나섰다.

'애쓰지 마셔요. 불 끌게 ~!

가만 보니 엄마 눈이 책 뒷줄에서 앞줄로 왔다 갔다 하는구만

그러고 무슨 책을읽는다고..

잠이 깨지 않은 눈꺼풀을 보니까

지금껏 잠자고 있었구만..

안자는 척 하기는. '

그러더니 안방 불을 탁 끄고 나가버린다.

 

내 참~!

얼마나 염치가 없던지 불이 꺼진 것이 다행이었다.

피식 웃음까지 나왔다,

그리고 행복한 책읽기를 포기하고 다시 자려고 하였다.

이불까지 뒤집어쓰고 참을 청했으나

딸애와의 대화가 생각나 웃음이 나와서 한참을 웃다보니

졸음이 달아났는지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

그리고 그 재미없던 책을 들고

거꾸로도 읽었느지 바르게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400페이지 책 한권 다 읽게 되었다,

덕분에 올 나이트를 해버리고 말았다.

 

- 거꾸로 읽는 신공을 발휘할 수 있는 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