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동지 죽 쑤다...

파도의 뜨락 2009. 12. 22. 09:50

동지 죽 쑤다...

쑤었다???
쑤다???
수다...

동지라고 친구가 팥죽을 끓인다고 합니다.
저는 원래 팥죽을 싫어하였습니다.
팥죽이나 동지 죽 끓이는 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결혼하고서는 시어머님이나 친정어머님이나
아니면 이웃집이나 친구 집에서 얻어먹으며 지금껏 살아왔고
또, 사먹는 것도 단체로 끼어서 일 년에 서너 번 정도입니다.

올해에는
어쩌다 살림 잘하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다보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당하고 물들어서
친구가 끓이지 말라고 본인이 끓여서 주마고 하였어도
저도 동지 죽쯤은 한번쯤 끓여 봐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이 들어서
어젯밤에 찹쌀을 물에 담그었습니다.
찰팍~!!
찹쌀 봉지를 터서 쌀 함지박에 넣고
수돗물을 붓고 보니
찹쌀의 량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닙니까?
친정에서 가져온 쌀이라서 kg을 잴 수가 없어 눈으로 짐작컨대
한 5kg은 족히 된 듯 보였습니다.
물을 부어버려서 일을 저질러 버렸으니  참 암담하였습니다.
어찌하든 처치는 해야 하겠고
어찌할까 어찌할까 하고 망설이다가
반은 찰밥을 지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야밤에 동지 죽 끓이려다가
뜬금없는 찰밥을 지으러 찹쌀을 전기압력솥으로 이동시키며
조금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침..
회사에 나가는 남편에게 찰밥을 내놓으니
곰국에 찰밥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합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식사메뉴를 자주 내 놓다보니
만성이 되었는지
그런 날에는 저렇게 아무 말도 안하고 그냥 먹습니다.
아들애가 두 번째 식탁에 앉았습니다.
찰밥을 보더니 먹을 생각을 안 하고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냐고 물어봅니다.
(아들애는 정월 대보름날만 찰밥을 먹는 날인줄 압니다)
아들에게 엄마가 먹고 싶어서 지었다고
아무 날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찰밥이라고
쓰잘데기 없는 언어 낭비를 해가며
겨우 두어 숟갈 먹이었습니다.
그러나 딸내미는 식탁을 처다만 보더니
늦었다고 도망가 버립니다.
찰밥만 덩그러니 저 혼자서 이박 삼일 먹게 생겼습니다.

낮에
친구의 조언으로 찹쌀 담근 것을 방앗간에 가서 빻아 왔고
내 능력 영역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안하던 짓 하니까 제대로 되지는 않겠지 하는 걱정도 생기었습니다.
아련한 기억 속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동지 죽 끓이며 새알을 만들던 것을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하였고
괜스레 동지 죽을 쑨다고 설레발 친 것을 후회도 섞여 가면서
동지 죽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둥글게 둥글게 새알을 진짜 새알처럼 만들고
팥도 삶고 걸러서
팥죽에 매달린 덕에 드디어 팥죽을 완성했습니다.

애들은 설탕을 듬뿍 집어넣어 달짝지근하게 만들어
아주 맛있다고 먹습니다.
생전 처음 끓여 본 것이어도
요렇게 잘 끓여진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져서 애들에게 자화자찬을 해 대었습니다.
어머님이나 친구들에 대한 동경도 뭉글해졌습니다.
그래고 저는 흐뭇했습니다.
속으로 무지 자랑스러워하는데 갑자기 아들애가 .
왜? 동짓날 동지 죽을 먹어야 하냐고 물어 봅니다.
제가 아는 상식을 풀어서 대답하기가 참 난감했습니다.
(동지여서 먹는다. 귀신 쫒아 내려고 먹는다)
차마. 이렇게.
대답을 하고보니..
괜스레 팥죽을 쑤어서 무슨??
해서 팥죽을 맛있게 먹고서 이렇게 인터넷 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동지 죽 끓여 드셨어요???

- 생전 처음 동지 죽 끓여보고 뿌듯한?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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