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거침없는 사랑의 수다..

파도의 뜨락 2007. 2. 4. 20:12

    거침없는 사랑의 수다.

     

     

    새해 벽두면

    우리 시댁은 신정을 쇠는 것도 아니면서

    시 어머님 생신이 끼어 있어 어김없이 형제들이 자연스레 모입니다.

    다 모이는 것은 아니지만 직업상 교육상 시간을 내지 못한 몇 명과

    언제나 열 서너 명은 빠짐없이 모입니다.

    올 해에도 변함없이 모여서 애기 보따리가 풀어 헤쳐졌습니다.

    마침 남자들은 보이지 않고 여자들만 모여 앉아있을 때 일입니다.

    시댁과 친하게 지내시며 가까이 사시는 좀 특이한 관계인

    제 친정모친까지 초대 되시어서

    한참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재미있게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새해이고 하니

    올해 정해년 돼지띠인 관계로 띠 애기가 나왔습니다.

    아버님 계보에 자녀가 1녀 5남이기에

    둘째형님네만 자녀가 없고

    모두 둘씩 사이좋게 족보를 유지 하는 지라

    다 모이면 부모님 까지 24명이 됩니다.

    그 중

    우리 시댁은 유난히 호랑이띠와 돼지띠가 많습니다.

    그래서 호랑이와 돼지를 찬양하는 대세가 강합니다.

    올해는 특히 돼지띠 해인데다가

    힘세고 목소리 큰 어른돼지가 더 많은 관계로

    한참을 돼지띠 애기에 목청을 높이면서 열띤 논쟁에 들어갑니다.

    각자 본인의 사는 곳의 지명을 붙여가며.

    강릉돼지는 어떻고 .

    김제돼지는 과거에 어떠했고

    전주돼지들은 지금 어떻게 사느냐는 등

    한참을 돼지애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무르익습니다.

    그러다가

    띠 분석에 들어갑니다.

    돼지띠는 밥 굶지도 않고 그냥 돈이 생긴다느니…….

    호랑이띠가 힘세고 영리하다느니…….

    닭띠가 잘사느니……. 소띠는 잔 일이 많다느니…….

    토끼와 용띠가 잘 맞느니 안 맞느니 하면서

    갑자기 철학자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내내 잠잠하시던

    울 친정모친이 한마디 거듭니다.

    “쥐띠가 영리하고 잘살아요.”

    그 말 한마디에

    한창을 무르익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잉? 무슨 쥐위띠?? 하는 분위기로 바뀌며 모두 눈이 방울 만 해집니다.

    그 때까지 그 많은 띠 얘기를 주절이주절이 떠들었건만

    쥐띠 애기는 띠 자체가 없는 것처럼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쥐 애기가 나오니 모두 뻥한 표정으로 친정모친을 바라다봅니다.

    그러나 울 친정 모친께서는 그 표정들을 보며 여유 있게 웃으시며

    꿋꿋하게 본인이 아는 수준대로 애기 하십니다.

    “쥐띠들은요. 영리할 뿐 아니라 진짜로 잘 산데요 생전 밥 굶지도 않는데요.”

    그러시더니 마치 본인 얘기 하시는 것처럼 말이 바뀌어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아는 것도 많고, 욕심도 많고, 남들에게 지고도 못살고, 꼭 목적을 이루고 마는 끈기도 있다고요.

    하하.. 제가 아는 쥐띠들을 둘러보면 대체로 그렇던데요?”

    모친의 말을 듣고 있다가 제 시누이가 못 참고 한마디 합니다.

    “사돈 어르신 쥐띠세요??”

    그러자 모친은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저는 소띠 입니다아~! 저기 있는 우리 딸이 쥐띠이지요.”

    그러자 그 때까지 뜨악한 표정이었던 모든 식구들의 폭소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를 쳐다봅니다.

    “아~하~”

    “아휴. 자네는 좋겠네!…….”

    “형님, 좋으시겠어요...? 응원하시는 분이 있어서요.”

    하며 마구 웃으며 저를 놀려 댑니다.

    저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희 시댁에 24명이나 되는 식구 중에 쥐띠가 저 혼자이다 보니,

    그 동안 띠 애기가 나왔어도 한 번도 얘기를 안 하고 지냈었는데

    친정 모친 덕에 시댁에 나의 띠를 각인시키는 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친은 정색을 하시며 다시 얘기를 하십니다.

    “농담이 아니라 우리 딸은 영리하고. 배짱도 있고. 남도 배려할 줄 알지요.

    그러니 쥐띠가 정말 영리하고 좋은 것이지요.”

    하시며 아주 작정하신 듯이 딸 바보처럼 말씀을 계속 하십니다. 그러다가

    “사돈어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

    그러면서 화살을 시어머님에게 돌립니다.

    평소 저를 정말 예뻐해 주시는 시어머님이신지라

    즉답이 나오십니다.

    “맞아요! 맞아요! 우리 며느리가 최고지요.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저애 자랑하고 다닌답니다.”

    무엇이 최고인지

    무엇이 영리한지 말도 되지 않은 부문에 살을 붙이시며,

    비교도 해 가며 두 분이 저에 관한 칭찬 일색의 얘기로 아주 맞짱을 뜨십니다.

    갑자기 띠 애기는 사라지고 저의 애기만 하시는 두 분을 구경하던

    다른 식구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웃어대며 한마디씩 합니다.

    “ 쥐띠가 무슨 영리합니까?? 사돈어른께 첨들 어요~!” 하면서

    “ 다른 쥐띠들을 보면 맨 날 잔일만 많고 고생만 하드만~요”

    “ 제가 보았던 쥐띠들은 관심거리도 많고 일만 벌이고 다니던데요~”

    “ 쥐가 너무 약아서 쥐띠라면 이상해요 ”

    하는 표정들로 일부러 놀리며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이 상황이 황당하고 어이도 없기도 하였지만

    완고한 표정의 모친의 이야기에 뭐라 토를 달수가 없었습니다.

    뜬금없는 띠 애기에 딸을 끼워 넣으시는 것을 이해하는 시댁 식구들과

    그렇다고 장소 분간을 못하시고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쏟아낸

    친정모친의 마음을 알기에

    저도 그만 웃음을 쏟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딸을 사랑하시는 우리 모친.

    파이팅입니다.

     

     

    - 갑자기 모친이 그리운 파도-

     

     

     

    0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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