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희한한 전염볍

파도의 뜨락 2011. 3. 30. 23:59

     

 

난 정말 희한한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어렸을 적부터 누가 아프다는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면 누군가 내 눈앞에서  어디가 '아프다' 소리를 하고

그 '아프다' 는 소리가  내 귀로 들어오는 순간

난 샘이 나듯 어김없이 그 시간 이후부터 내가  아파버렸기 때문이다.

상대가 배가 아프면 나의 배가

상대가 머리가 아프면 나의 머리가..

상대가 다리가 아프면 나의 다리가..

나의 기억이 어릴 적부터였으니

그 수많은 시간부터 습관처럼 아니 당연히 그런 것처럼

남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전염이 되어

어김없이 내가 아파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지금껏 살았다. 

다행이라면 몇날 며칠 아픈 것이 아니고

순간의 마약처럼 그날 끝나버린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전이 현상을 나만의 희귀병이라 여기며 살았는데

아무래도 나의 신경세포에 문제가 있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배가 아프다' 소리만 해도 

나의 배가 아픈듯하여 반사 신경으로 나의 손은 내 배를 만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무심히 뱉어도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파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쿡쿡 눌러보기도 한다.

남이 다리 아프다고 주무르면 내 다리가 갑자기 저려서 앉아 버리게 되고

남이 손목이 아프다면 내 손목까지 시큰거려서 손목을 흔들어보기도 한다.

심지어 남들이 하품을 하면

그 또한 샘나듯 하품을 하고 졸려버리는 일도 생긴다.

전화로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으면 괜찮은데

직접 눈앞에서 보고 들으면 안타깝게 빠르게 전파되듯 내가 반응이 되는 것이다.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상대방이 아픈 곳을 말하는 즉시 

난 덩달아 그 부위가 왜 아파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아프다는 것은

자연스레 나도 앓거나 체험을 하게 되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한때는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멀리 하게 되었고

누가 아프다고 하면 그 사람을 피해 멀리도망을 다녔던 적도 있었고

병문안도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되도록이면 가지 않으려고 애쓴 적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위에 아픈 친구들도 늘어난다.

어깨나 허리나 다리나 배나 눈이 안 보인다거나 그런다

친구들 때문은 분명 아닐 터인데 내게 속한 병의 수도 더 많아졌다

그러니 친구나 가족들이 아픈 것은 나도 아픈 것이니

아무리 아프다 하여도 들으나 마나가 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요즈음은 그렇게 아픈 얘기 전염되는 일이 자연스레 잊혀져갔다.

 

엊그제 몇 년 만에 지인을 만났다.

그분이 그동안 구강암을 앓아서 수술하고 투병중이시라는 말을 들었다.

수술 덕에 말소리도 어눌해 졌지만

참으로 대견스러이 견디시고 수술을 하셔서 기뻐서 안아 드렸었다.

그랬는데..

어김없이 내 입이 그날 저녁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났는데 이젠 잇몸이 다 헐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괜스레 그분 생각이 나고

나도 몸 쓸 병이 걸렸나 하는 의심까지 든다.

오늘 병원이라도 다녀와야 할까보다

이 몹쓸 나의 전염 병..

이 몹쓸 전염병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