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친구들이야기

[스크랩] 시쓰기는 시쓰기에 대한 자기 비판이다.

파도의 뜨락 2007. 6. 23. 09:21

 삶의 의미나 생의 秘境은 현재의 시간으로는 파악되어지지 않는다. 다만 기억을 통하여 삶의 가치나 삶의 궁극적 경지가 재발견되어진다는 의미다.

 

 최휘웅, '시간의 멈춤, 그리고 기억의 단층'

 

 

 시는 자기 논지의 옳고 그름을 따져 증명함으로써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시는 오히려 논리적 사유 과정은 접어 두고 대상의 본질에 직핍한다.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를 환기할 뿐이다. 한마디로 시는, 아니 좋은 시는 논증으로 채우기보다는 직관으로 비우는 쪽에 가깝다.

 

 

 이성우, '벗어나기로부터 비우기까지 - 이인원 시학의 여정'

 

 

 얕은 사념과 상상력의 빈곤에서 빚어지는 언어는 아무튼 남을 감동시킬 수가 없다.

 

 <시는 상식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도주>라거나 <시는 형이상학이 아닌 노래>라는 말이 주는 공감대는 시가 행해야하는 근원적 위상에 대한 통찰일 것이다. 시의 본질은 때 묻은 일상의 지루한 묘사나 논리의 추구, 혹은 타성적 기도문이 아닌 진정한 것에의 헌사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이유경, '마무리와 시작'

 

 

 본질주의자들은 우리의 삶을 본질/현상, 영혼/물질, 정신/육체 등등으로 나누고 대립시키고 전자를 우위에 둔다. 그러나 이런 사유는 폭력이다.

 

 내가 무슨 본질을 주장하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을 소박하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이유이고 한편 이들은 썩어가는 황홀한 자본주의적 삶을 살면서 시는 순수한 이슬, 고상한 영혼,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그런 점에서 위선적이다. 쓰레기통 속에 살면서 이슬을 노래하는 건 위선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산을 찾는다거나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시인들을 믿지 않는 편이다. 

 

 자아는 자아가 아니고 자아가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나를 모르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모두다 시가 되고 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쓴 시는 시가 아니고 시가 아닌 것도 아니다.

 

 역사는 비약이고 본질은 역사, 시대의 한 양상이다. 초월적 본질은 없다. 시쓰기는 시쓰기에 대한 자기 비판이다.

 

 중요한 것은 자유이고 해방이다.

 

 이승훈, '무엇이나 시가 된다'

 

 <현대시학>(2007.6)

출처 : 玄琴堂
글쓴이 : 玄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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