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이는 낙서

'밥' 이 라는 단어의 미로 속에서..

파도의 뜨락 2006. 2. 5. 10:43
    밥' 이 라는 단어의 미로 속에서.. 시부모님 댁에서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시부모님과 남편 삼형제 부부가 모여서 작은 다과상을 차려 놓고서 지난 추억이며..집안 애기로 담소가 한창이었습니다. 이집 저집 이야기가 돌고 돌다가 우리 집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어졌습니다. 제가 입맛 까다로운 우리 집 식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자 암 말 아니하고 듣고 있던 남편이 피식 웃더니 저의 요리법에 대에 불만을 쏟아 놓는 것입니다. 평소에 말이 없던 남편이 제 애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시댁식구들도 흥미롭게 듣고 있고 저도 놀라서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술기운이었는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어가려는 연장술이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식탁을 꾸민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반찬이 맛이 없으면 밥이라도 맛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밥마저도 맛이 없을 수가 있냐고 하면서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이 열띠게 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에 몽땅 밥을 지어서 보온밥통에 넣어 두고서 정성이 부족한 밥상을 차린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댁식구들은 까무러치게 웃는 것입니다. 저는 네 사람의 제 각각인 식성 탓을 돌리면서 힘든 나의 주부생활을 호소하면서 위기탈출을 노렸습니다. 그러다 매 끼를 전자 보온밥통 것이 아닌 새 밥만 맛있게 하여 준다면 남편은 반찬 투정을 안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저도 밥만 맛있게 하면 한 가지 짐을 벗겠거니 하고 억지로 형제들의 권유에 동의를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올 한해의 소원이 ‘맛있는 밥 먹어 보기’ 로 반전이 되어버렸던 저의 '밥 맛있게 하기' 이야기입니다. 작년 연말에 단체로 작지도 크지도 않은 코팅냄비 솥을 선물 받았습니다. 저는 냄비가 많기에 쓰지도 않고 창고에 넣어 두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같이 선물 받은 분들 애기 중 그 냄비 솥에 밥을 지어 먹으니 밥이 무척 맛이 있다는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밥 이야기 냄비 이야기를 하시기에. 압력밥솥과 전기밥솥 밖에 사용하지 못하던 저는 자연히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경청을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의외로 압력솥이 아닌 냄비 솥도 밥 짓기가 쉬워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섞어야 하고 또 얼마나 시간을 투자 하는지를 묻기도 하고 하여 그날 냄비로 밥하는 법을 공부를 하였던 기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그 냄비에 밥을 한번 맛있게 지어서 남편에게 당당하게 큰소리치리라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제 손으로 밥을 짓기 시작한 것은 전기밥솥입니다. 결혼하고서는 압력솥이라는 용기의 찰진 밥맛에 익숙해 졌고 지금은 압력솥과 전기압력솥을 번갈아 가며 밥을 지으면서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머나먼 기억을 되살려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아궁이에 불 지펴 지어 주셨던 검은 솥이 생각나고 모친이 지어 주셨던 연탄위의 하얀 양은솥이 생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손에서 전기밥솥과 압력솥이 아닌 다른 용기의 밥 짓기는 여행 다니면서 사용했던 코펠과.. 신혼 때 잠깐 한두 달 사용했던 코팅 냄비정도 입니다. 제게 있어 압력솥이나 전기밥솥이 아닌 다른 용기의 밥 짓기는 일종의 도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코팅 냄비 솥을 꺼냈습니다. 4인분의 하얀 쌀을 씻어서 냄비에 담고 물을 압력 밥솥처럼 부어서 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뚜껑을 뚫고 나오는 넘치는 밥 물 때문에 지켜 서서 여러 번 뚜껑을 열고 닫고 하느라고 도대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없어져 밥이 다 되었나 싶으면 쌀이 익지가 않아서 물을 다시 부어야 했습니다. 냄비에 밥하는 것이 몹시 귀찮다고 느꼈습니다. 친구 말을 기억할 때 20분이면 밥이 충분히 지어진다고 했습니다. 밥물이 넘치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은 바대로는 되지 않았고 장장 시간만 40분을 소화하고서 겨우 밥을 완성한 밥은 보온밥통에서 며칠을 묶은 밥처럼 힘이 없고 으깨진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식탁에 밥을 떠 놓고서 가슴이 두근두근 눈치만 실컷 보았습니다. 이미 이런 밥에 익숙해져서 새 밥이 아니라 느꼈는지. 아니면 출근시간이 바빴는지 남편은 별 말이 없이 두어 수저 뜨더니 그냥 나갔습니다.……. 저녁입니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고 그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다시 기억을 되살리고 하여 다시 밥 짓기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일단 쌀을 30분 이상 불려서 물을 조금만 잡고 밥을 지어라고 하여 그렇게 밥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물을 적든 많든 넘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지어 놓은 밥이 이제 너무 익지가 않았습니다. 아침밥보다도 더 이상한 밥이 되어 버렸습니다. 밥에 찰기와 생기도 없습니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맛있는 밥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그 밥을 남편에게 줄 수가 없어 저녁 반찬을 재빨리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남편의 밥 위에 끼얹져 내놓아 위기를 모면해야했습니다. 뒷날은 쌀을 불리고 밥의 량을 줄여 3인분을 해 보아도 역시 실패입니다. 불을 아주 약하게 하여 물을 넘치지 않게 해 보았으나 밥의 모양과 질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뜸을 들여야 한다기에 30분을 더 불 위에 올려놓으면 타기까지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까지 1주일을 꼬박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 보았으나 한 번도 맛있는 밥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이렇게 밥이 더 이상하게 나가도 예전처럼 똑 같이 밥에 대해서 별 말이 없습니다. 혹시나 새해 소원을 잊었나 하는 거만한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찬이 부실해도 별 말이 없으며 주는 대로 말 없이 먹는 것을 보면 새해 소원은 분명 기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남편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새겨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주일 이상을 이렇게 맛이 없는 밥을 해 대었으니 생각건대 오늘 내일쯤은 남편의 강한 목소리 KO펀치가 날아올 것 같습니다. 저는 애가 타는 나날의 연속입니다. 남편에게 KO펀치를 맞기 전에 밥을 맛있게 지어서 정성 드려 지은 밥이라고 남편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고 당당하게 큰 소리도 쳐 보고 싶었으나 날마다 실패의 연속이니 제 코가 석자입니다. 이제는 비상대책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다시 저녁부터는 압력솥에 밥을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실패는 면할 것 같습니다. 다른분들의 새 냄비 밥맛의 평에 속아서 꿈을 이루고자 하였던 소망과 밤낮으로 새 냄비에 맛있게 지으려 했던 내 정성 어디가고 저만 코가 깨지고 물러갑니다. - 열 한 번 째 냄비솥 밥을 실패하고 서러운 파도 - 0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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