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친구들이야기

[스크랩]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김남희]

파도의 뜨락 2006. 9. 7. 08:11
자유여행가 김남희씨는 우울하지만 유쾌하다. 혼자 세계를 누비는 대담함을 가졌지만, 스스로를 '까탈이'라고 부른다. 그는 곰배령(강원 인제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옛 추억을 더듬으며 독자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강원도 산자락에 내린 첫눈 기사로 금세 직장인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할 만큼 발랄한 성격을 가졌다.

그는 조그마한 체구에 다양한 내면을 갖춘 여자다. 던질 때마다 다른 숫자가 나오는 주사위처럼, 질문할 때마다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쏟아졌다.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 "소심한 A형"이라 평하고, 마흔 전후에는 깊은 산자락에 집을 지어 가족을 꾸리고 살고 싶단다.

"왜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냐"는 질문에는 대뜸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 중 하나"라며 호탕하게 웃어버렸다. 26일 오후 1시간 반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그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김씨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두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의 DNA에 '여행' 인자가 들어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직장을 다니다 95년 영국에서 2년여 유학생활을 했고, 터키 대사관에서 근무하다가 본격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2000년 <오마이뉴스>에 '몽골여행' 연재를 시작으로 글쓰기를 시작, 전국 종단여행 동안 쓴 기행문을 엮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이라는 책을 냈다. 지금은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티벳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이야기를 엮어 11월 또 한 편의 기행서를 낼 계획이다.

그는 "<오마이뉴스>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0년 창간 당시에는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인터넷 매체라서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인생의 첫 위기였던 이혼 이후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는데 온라인으로 글을 쓸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남희씨와 일문일답.

- 왜 그렇게 돌아다니나.
"싫어하는 질문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왜 여행하세요?', 둘째 '여행하면 돈이 돼요?', 셋째 '외롭지 않으세요?', 넷째 '지금까지 가본 나라 중 어디가 제일 좋아요?', 또 '몇 개국 다니셨어요?' 이런 질문 정말 싫어한다.

그래도 왜 여행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고, 가장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었고, 가장 간절하게 원했던 일이고, 그 일을 하는 동안 행복하기 때문이다."

-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일상을 버리려면, 적지않은 용기가 필요할 텐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답답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로 살아가는 것도 너무나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가 가부장적·권위적인 것, 모범답안이 다 정해진 나라에서, 인생의 마스터플랜이 끝까지 쫙 짜여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나라에서 사는 것은 남녀를 떠나 모두를 힘들게 하고 버겁게 하는 일이다.

그것이 너무 버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서 적당한 남자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아파트 평수 늘려가면서 나이에 따라 차도 바꾸면서 남들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 길밖에 없는지 회의가 들었다. 내 경우는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다. 결국 '부적응자'이다(웃음). 남들은 '용기'라고 좋게 봐줄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면 못 살아남을 것 같았으니까 선택한 것이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애착, 왜 없겠냐만은..."

▲ "혼자 걷다보면 전혀 연관없는 모든 생각들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텅 비는 순간이 온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 짐을 싸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그런 건 없었다. 대학 다닐 때 처음 유럽여행 갔던 것이 계기라면 계기다. 대학 졸업하고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할지,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술은 없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랬을 때 '다른 나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조금씩 돈을 모았다. (다른 나라에서) 남들 뭐하고 사는지 몰라서 유럽을 갔다. 그 여행이 결국 내 삶을 바꿨다.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되고, 사는 게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근데 내가 뭘 하고 싶지? 그걸 찾느라 (테이블을 치면서) 10년 정도 걸렸다."

-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에 대한 애착은 없나.
"(강한 어조로) 있다. 왜 없겠나(웃음). 하지만 안정적인 삶이 주는 위안보다 지금의 자유가 내게는 더 치명적이고, 매혹적이다. 이 나이 되도록 남들처럼 이뤄놓은 게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좋다. 지금 내가 가진 걸 생각해보면 남들이 갖지 못한 걸 갖고 있으니까. 집도 없고, 빵빵한 적금 통장도 없고, 든든한 남편도 없고, 토끼같은 자식도 없지만, 대신 나에게는 내가 보고 싶은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용기, 열정, 호기심이 남아 있다."

- 혼자 걸으면서 무슨 생각하나.
"오만 잡생각 다 한다. '점심에 뭐 먹을까'부터(웃음), 근데 오만 잡생각하면서 걷다가 어느 순간 모든 생각이 갑자기 다 사라지고 머리속이 깨끗하게 텅 비는 순간이 온다. '오늘의 주제'하면서 걷는 것은 아니다. 전혀 연관없는 모든 생각들이 내 안에서 일어났다 사라지고를 반복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텅 비는 순간이 온다. 그 경험이 좋아서 더 걷는 것 같다. 그냥 걷는 게 좋고, 내 앞에 길이 있기 때문이다."

김남희를 변화시킨 여행의 힘

- 소심하면서도 대담하고, 까다로우면서도 열려있는 다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흔히 '혼자 여행하는 여자라서 친구도 잘 사귀고, 넉살 좋고, 아무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난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사람 만나고 사귀는 것이 어렵다. 나름대로 수줍음이나 소심함이 많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서 (마음을) 열려고 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열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 여행하면서 자신의 다른 부분을 찾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여행은 나의 약한 부분, 내가 변화시키고 싶었던 부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극복해가는 것이 좋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지었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

- 티벳, 인도 등 주로 '저개발국'을 선호하는 이유는.
"일단 기본적으로 선진국형 인간이 아니다. 미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고, 그 나라만이 보여주는 것이 있어서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개발국가'가 내 관심을 끌고, 오히려 재미있다. 뜻대로 안 풀리는 게 많아서 좌충우돌하는 경우도 많다. 또 현지 사람들이 우호적인 편이라 깊이 사귈 수 있다."

- '저개발국'에서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
"아시아에서 특히 '혼자 여행하는 아시아 여자'라는 이유로 어디를 가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걸고 궁금해한다. 그래서 되레 친구를 사귀기도 쉽다. 한편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겪으면서, '플랜A'에서 벗어난 '플랜D'가 튀어나오는 상황을 헤쳐나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신뢰와 애정이 쌓이고. 그런 것을 즐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풀리고, 예상대로 끝나는 그런 여행은 안전하고 무사히 떠났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몰라도, 그만큼 떠나기 전이나 돌아온 후 별로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수많은 상황을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일을 겪으면서 그 속에서 만나는 나는 훨씬 변화되고 성장하고 달라진 자신일 경우가 많다."

▲ 인생의 위기를 맞아 세상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을 때 김남희씨는 온라인 글쓰기를 하며 네티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비아'식으로 여행했다간 다리 가랑이 찢어진다"

- 스스로 '까탈이'라고 할만큼 성격이 까다로운데, 여행 중 어려움은 없나.
"즐겁지만은 않다. 스트레스도 받는다. 하지만 끝내는 즐기게 된다. 감수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체념하게 된다. 특히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체념하는 법을 배웠다. 체념이기보다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것을 배웠다. 주어진 것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기차? 골라서 탈 수 없는 경우 많고. 제 시간에 역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화장실 딸린 깨끗한 방에 자고 싶지만, 그런 방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갖고 불만을 토로하고 불평하면 내 여행을 스스로 망치게 된다. 일단 포기하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쁘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스스로 키울 수밖에 없다."

- 친구도 잘 사귀나.
"소심한 A형이다(웃음) 나이가 들면서 생긴 미덕 중 하나가 '사람을 볼 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사람을 알기 위해 열 시간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제는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줄 알겠다. 그리고 비슷한 향기를 내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굉장히 빨리 열린다. 경계를 허물고, 아주 쉽게 친구가 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안 통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잘 열지 못한다. 단점이기는 하다."

- 김남희 하면 한비야가 떠오른다.
"한비야씨와 비교 많이 한다. 한씨는 내가 절대 넘을 수 없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한씨는 어학능력도 남다르고, 그의 강심과 배짱은 따라갈 수 없다. 기본적으로 훨씬 강한 사람이고, 배포가 큰 사람이다. 근데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고 쓸데없는 부분에 까다로운 게 많고, 여행을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꽉 막힌 부분이 많다.

하지만 나에겐 끈기가 있다. 내가 믿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자' 하는 것이 있다. 남들보다 빨리 가고, 더 많이 성취할 능력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끝장을 본다. 내가 한비야식의 여행을 하면 다리 가랑이 찢어진다. 혹은 한씨처럼 톡톡 튀고 재기발랄한 글을 쓰겠다고 덤비면 안 된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중요한 건 내 페이스대로 끝까지 가는 것이다."

[김남희에 대한 몇 가지 편견] "팔자 폈다고? 팔자가 센 거지!"

▲ <오마이뉴스>에 산티아고 일기를 연재하며 김남희씨가 걸은 거리는 총 900 여 킬로미터. '걷기' 방식만을 고집하는 탓에 그의 발은 물집이 나고 터진 자리에 굳은 살이 박혔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자 혼자 하는 여행. 돈이 많은 여자이거나, 성격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얌전하게 살지 못하는 여자일 수 있다. 이같은 질투와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자유여행가 김남희씨는 그를 향한 편견에 대해 어떻게 대답할까. 그에 대한 편견 몇 가지를 물어봤다.

- 김남희는 여행중독자?
"여행의 중독성이 강하다. 마약을 안 해봤지만, 마약보다 강할 것 같다. 그런데 장차 정착하고 살 생각이다. 평생 여행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이 뜻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마흔 전후해서 국내 어느 깊은 산자락 밑에 내 손으로 집을 지어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살고 싶다."

- 돈도 안 벌고, 팔자 폈구나?
"(웃음)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좋아하는 여행을 해서 그 여행을 통해 돈을 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알다시피 적은 돈을 벌고 적은 돈을 쓰면서 여행하고 있다. 팔자가 폈다? 팔자가 세다(웃음). 팔자가 폈으면 누군가가 벌어다 준 돈으로 편하게 패키지 여행하면서 다닐 것이다. 팔자 세니까 고생하는 여행 다니는 것이다."

- 좋은 부모 만나 돈 많은가 보다?
"진짜! 아니다. 좋은 부모 만난 것은 사실인데, 돈은 없는 부모를 만났다. 유학도 직장생활 2년 하면서 돈 벌어서 갔다. 유학 가겠다는 목표로 직장생활 2년을 버텼다. 다행히 부모님이 물려줄 돈도 없고 뒷바라지도 못해주셨지만, 나를 믿고 격려해주셨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난 것보다 훨씬 감사한다."

-혼자 여행하는 여자, 성격 까다롭겠다?
"인정! 까다로운 면 많다. 그런데 여행하면서 받아들일 줄 알고, 참을 줄 아는 걸 배워가면서 조금씩 순해지고 부드러워졌다. 무조건 순하고 부드럽게 되고 싶지는 않지만, 쓸데없이 강하고 까다로운 부분은 가지를 치고 싶다. 사소한 일에 완급을 조절하면서 융통성 있게 굴되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대신 중요한 일에 원칙을 놓치지 않는 '큰' 힘을 갖고 싶다."

- 미디어 접촉이 많은 것을 보면 유명해지고 싶은 야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없었다. 근데 지금은 돈은 좀 벌고 싶다. '돈이 있다면 잘 쓸 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여행 다니면서 큰 돈이 아니어도 어떤 이들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는 걸 봤다. 하지만 유명세로 자유가 침해당해야 한다면 정신이상자나 성격파탄자가 돼서 못 견딜 것이다(웃음).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내 자신'이기 때문에 돈이나 유명세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오마이뉴스> 덕분이다. 창간 당시에는 사람들이 <오마이뉴스>를 잘 몰랐고, 그때 인생에서 첫 위기인 이혼을 한 상태였다. 세상 밖으로 못 나가고 방구석에서 울던 한심한 나를 보면서 의기소침해 있었다. 외부와 소통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던 때 '글 써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인터넷이라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

- 어딜 가나 옛 추억에 젖어서 청승떤다?
"청승떤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추억이나 수많은 사건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상처로 남아있어도 소중하다. 그 일을 통해 성장했고 고통과 아픔, 상처를 통해 자랐기 때문이다. 단순한 소회, 연민, 청승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힘이 된다. 그리고 내 편을 들어주는 독자들은 그런 우울함, 쓸쓸함에서 나름대로 '김남희식' 유머, 세상을 보는 낙천성이 있다고 하니까 고맙다."
출처 : 북청물장수의 인간탐구
글쓴이 : 북청물장수 원글보기
메모 : 어딘가에 내가 머무는 느낌 공감이네요.. 퍼갑니다..